십자가 신앙에 소망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9-21)

예수 십자가 신앙에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 갈라디아서 2:19-21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서론]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가 '성'이라고 했습니다. 성적 욕망, 욕구, 충동이 인간의 행동 대부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의 행동 전반을 제약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가 영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마귀는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아무리 외치고 명령을 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욕망의 문제입니다. 해결방법은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로만 해결됩니다. 십자가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성령으로 채워지면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과 및 어린 양 보좌로부터 나오는 생명수의 강에 의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욕심이 제어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가 아니면 이 세상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왜 오셨겠습니까? 왜 십자가에 죽으셨겠습니까? 욕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해결해도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말에 ‘아포리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이라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비극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의 비극은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욕망을 통제하지 않으면 인간의 운명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숫양을 잡아 제사 지낸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옛날보다 더 많이 대학에 입학하고 교육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세상적으로 더 똑똑해졌지만 교육에 의해서 사람의 심성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육이 희망인줄로만 알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참된 인간에 이르는 길은 무엇입니까? 한국인이 좋아하는 밥 딜런이라는 가수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사람이 많이 경험한다고 해서, 참된 인간이 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어도 평화를 모른다는 가사입니다. 이만큼 인간의 본성은 무섭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투기네스라는 역사가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썼습니다. 그는 인간의 앞날을 알고 싶은 사람은 내 책을 읽어보라 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면밀히 관찰해보니 인간은 본성적 욕망으로 인하여 절대로 비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비극을 연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비극은 욕망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의 통곡 소리는 역사의 지평선에서 처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고 오늘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주변에서 처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디에 답이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2장 2절이 답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주 예수로 인생의 주인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인을 바꾸지 않으면 인생은 계속해서 비극입니다. 그 다음 그분의 사랑의 십자가가 답입니다. 십자가를 붙잡으면 모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를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비극을 피하고 소망을 붙잡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1. 십자가로 욕망을 통제하여야 소망이 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인간 욕망을 십자가로 통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욕망을 통제하여 자기 인생의 비극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쁨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로 저주를 막아내었습니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바울은 예수의 최고 제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으로는 최고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죽고 난 뒤의 인생의 비극은 지옥입니다. 사후의 비극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 한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분, 그 한 분 이 나를 아주 강하게 사랑한다는 것을 사실로 믿고 그 분을 향한 단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단순한 마음을 가져야 통제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통제하는 사람은 비극이 없고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십자가에 못 박히면 죽습니다.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본성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함으로써 욕망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함으로써 욕망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듯이 간절히 기도함으로 찬송을 함으로 욕망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맘으로 예배를 드림으로써 욕망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식의 세계에서 본성의 세계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으로 밥도 안 먹는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내 욕망에 못을 박아 놓았기 때문에 내 욕망대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임으로 그리스도가 살아서 나를 통제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하라 하시면 우하고 좌하라 하시면 좌합니다. 아휴,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 아래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 사랑하시기에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내 욕망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으로 가서 마음대로 살면 행복할 텐데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니까 나도 그분을 위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너무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영적으로도 손해가 아닙니다. 영원한 유익입니다. 천국에 확실하게 갑니다. 정신적으로도 손해가 아닙니다. 세계의 정신사를 주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물질적으로도 손해가 아닙니다. 믿음이 확실한 가정이나 개인은 형통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욕망을 통제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비극은 물러갑니다. 저주는 물러갑니다. 희망이 넘칩니다. 반드시 잘 됩니다. 예수 믿고 잘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믿는 것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나의 본성은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마음에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밤낮으로 외쳐야 합니다. 심각하게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사순절입니다. 인생의 승리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 이렇게 외치십시오. 욕망을 통제하면 빛나지 않을 성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순절이 3주 남았습니다. 십자가로 욕망을 통제하셔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랑 안에 거하여야 소망이 있습니다.
갈 2:20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신앙생활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행동을 똑바로 하고 믿으면 깨닫게 됩니다. 실천하려고 힘쓰면 깨달아 집니다. 잘 몰라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키다보면 깨달아집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똑바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다보면 깨달아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필요하지만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주로 삼아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다. 그 사랑은 자기를 버리신 십자가의 사랑이다. 이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입니까?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을 버리신 사랑입니다. 자기를 왜 버렸습니까? 우리를 사랑해서입니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하고 사귀기를 원합니다. 저도 우리 성도들의 자녀들이 결혼하면 우리 성도들보다 더 나은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못한 사람과 살면 힘이 듭니다. 경제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좀 감당하기가 쉬운 일인데 인격적으로 힘듭니다. 투자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희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잘난 천사, 아름다운 천사, 선한 천사를 사귀지 않았습니다. 낮고 천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사랑하면 희생이 따릅니다. 손해가 따릅니다. 엄청 귀찮습니다. 달라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당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각오하셨습니다. 그 결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낮고 천한 것을 모릅니다. 사랑하기에 그냥 좋습니다. ‘그 사랑 안에’가 인생의 성공 비결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본성을 차단하고 사랑 안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율법만 생각하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금식도 너무 가혹하게 하지 마십시오. 가능하면 음식을 오래 씹고, 적게 먹는 시므온 금식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크게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은혜롭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미켈란젤로는 예수와 그의 십자가만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랑만 생각하였습니다. 현실적인 문제, 즉 십자가와 같은 짐을 피하지 않았기에 대가가 되었습니다.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알아서 조금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본성을 십자가로 막고 자기에게 주어진 영적인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켈란제로의 천재성은 세상적인 천재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천재성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결론]


십자가는 영적인 일입니다. 은혜를 더 받기 위해서 하는 모든 신앙 행위입니다. 신앙행위의 짐을 질수록 육적인 짐은 더 가벼워집니다. 짐을 지려는 자세에 따라 가벼워집니다. 주님의 도움을 받으면 가벼워집니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조건 속에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생스러운 조건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입니다. 기쁘게 십자가를 받아들입시다. 여러분은 십자가로 자기 통제를 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수준이십니까? 자신의 본성을 통제하면서 내게 주어진 사람,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려는 자세로 나아갈 때 여러분의 인생길은 반드시 행복이 찾아 올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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