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에 동참합시다(마가복음 14:32-42)

고난주간에 동참합시다


말씀: 마가복음 14:32-42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서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시면서 나와 함께 가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간다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루터가 1555년에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말씀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설교 시간이 길어져서 4시간 동안 설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중세 때 카톨릭 예배가 가식적으로 된 것 같이 이제 말씀 중심이라고 하면서 개신교도 가식적이 되었습니다.


이때 요한 아른트라는 사람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예수를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독교란 확실하게 믿으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다고 해놓고 따르지 않거나 사랑한다고 해놓고 따르지 않는 것은 가식적일 수도 있습니다. 믿으면 따릅니다. 사랑하면 따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아른트는 따르지 않는 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말로만의 기독교가 아니고 겉치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산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면 아내는 별로 좋지 않아도 남편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의 주간에 동참을 조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진짜로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행진하는 시연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는 못해도 다른 형태로라도 동참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그 동산에서 기도하고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갑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은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따라주지 못할 형편일 수도 있습니다. 마가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따라갔습니다만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고 섰다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에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 로마 병정, 빌라도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보이는 현실과 또 움츠리게 만들고 베드로를 좌절하게 만드는 영적인 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런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함으로 마귀가 나가지 못하고 마귀를 계속 피하는 영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에 동참하지 않으려고 로마를 빠져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망가는 베드로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무 말 없이 주님은 로마 시내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외쳤습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는 로마 시내로 들어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습니다.


베드로는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선생님의 결정적 사역에 동참하지 못하였습니까? 첫째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는 대화입니다. 이 땅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하여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기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결혼하면 대화하지 않고 사는 방법이 있습니까?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대화가 있어야 천국입니다. 대화가 없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기도는 대화인데 이 땅에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누군가가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기도하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주님은 슬퍼하셨습니다. 제자들을 3년이나 교육시키셨는데 기도하라고 해도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잡니다. 기대하는 것보다 답이 너무 안 나와서 슬펐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향하여서도 기대하십니다. 사랑하니까 기대하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대하지 말라고 해도 기대하십니다. 투자를 많이 하셨기에 기대하십니다. 너무 많이 투자하셨습니다. 마음을 투자하셨습니다. 그런데 답이 안 나왔습니다. 너무 슬퍼하셨습니다. 막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번 고난주간에 기도에 동참하심으로 주님의 눈물을 닦아 드려야 합니다. 이번 주 새벽기도는 고난주간 새벽기도입니다. 새벽기도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은 저녁 기도에 참여하시면 어떨까요? 우리는 사순절을 지키며 기도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고난주간 한 주간 기도시간에 동참하시면 주님의 슬픔을 씻어 드릴 수 있습니다. 대화하면 상대에 따라 어떤 대상자는 용기를 줍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부활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 14: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기도하여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합니다. 고난에 동참하여야 하는데 고난에 동참하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왜 기도하지 못했습니까? 세상 생각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인자가 팔리는 것만 생각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어도 삽니다’라고 생각하였으면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천국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로 부활은 있습니다. 부활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줄로 믿습니다. 몇 월 며칠 날짜까지 말하면 이단입니다만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기에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죽어서는 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으로 갑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사는 것은 부활을 보고 삽니다. 고난 후에 영광이 있음을 믿고 삽니다. 역사철학자 콜링우드는 역사는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재된 총합적, 체계적, 조직적인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부활이 있습니다. 지금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부활에 참여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는 영광을 얻습니다.


영적으로 지금도 계시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재현됩니다. 재현되지 않으면 왜 우리가 고난주간을 지키는 것입니까? 재현되는 것이 아니면 우리는 왜 부활절을 지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의미적으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지금도 부활의 주인공이십니다. 우리는 죽으면 땅에 묻힙니다. 화장이 되어서 가루나 먼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당에 갑니다. 주님 앞에 섭니다. 너무 기도를 꺼리지 맙시다. 너무 손해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너무 희생을 꺼리지 맙시다. 죽으면 천국 갑니다. 죽으면 하나님과 같이 삽니다. 사람은 모두 다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고난 주간에는 동참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동참하여야 할까요? 


1. 마음으로 동참하여야 합니다.
막 14: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이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하십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나와 함께 가자하십니다. 갑자기 주님과 함께 가자하시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내려놓으십시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 겟세마네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이었습니다. 마음에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잠만 왔습니다. 신앙생활 그렇게 하면 결국에는 손해 봅니다. 주님에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도록 사랑하겠습니까? 주님께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천지에 구세주가 될 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사랑합시다. 주님을 따릅시다.


2. 기도로 동참해야 합니다.
막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은 고난 받으십니다. 주님의 고난은 이 역사 속에서 지금도 계속됩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무서운 형벌입니다. 가장 큰 고통은 고통당하는 시점보다 막상 다가오기 전이 제일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매를 맞기 전에 그 공포감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도움이 되려나 하여 데리고 왔던 제자들은 잠을 잡니다. 기도를 바랐더니 잠만 잡니다. 함께 깨어 있어 주기를 바랐더니 잤습니다. 고통에 동참하여 주기를 바랐더니 쿨쿨 잤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오늘날 주님이 계십니다. 고난주간에 영적으로 고민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고민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은 주위의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고민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기도하여 달라고 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기도하여 달라고 요청 받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자를 위해 기도로 동참합시다. 


[결론]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면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일어나 함께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마음에 없는 행동이었더라도 이제는 십자가를 향하여 진심으로 나아갑니다.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정성이 있는 예배와 봉사를 그리고 마음과 정성을 담은 헌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금주 고난주간에는 일어나 함께 가자는 주님의 요청을 받아들여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요청을 따른 요한에게 임한 참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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