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을 누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24:13-25)

부활 신앙을 누려야 합니다



말씀: 누가복음 24:13-25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서론]


초대교회는 매주일 잔칫날이었습니다. 잔치를 하다 보니 주일이 된 것입니다. 부활하는 날, 그 날이 좋아서 주님의 날, 주일이 된 것입니다. 주일이 로마 태양신의 제삿날이었다, 아니었다의 이론은 그런 식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실지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실하게 경험하니까 좋아서 기뻐서 정한 날이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였습니다. “들은 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는 말씀처럼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 절대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잔치하고 날마다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특별한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그분은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부활의 유전 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잘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갑니다. 나에게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께 집중하십시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동을 잘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갑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오시면 휴거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믿기만 하는 것이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재미있게 좀 살아야 합니다. 부부가 사는데 결혼을 했다, 호적에 올렸다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마트도 같이 가고, 아이도 업어주고, 여행도 같이 다니고 된장국이나 콩나물국도 같이 먹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와 함께 사시는 예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간단하게 쉽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인간사회는 항상 예의가 있었습니다. 예의는 중심이나 겉모습이 같아야 재미가 있습니다. 겉과 속이 너무 다르면 재미가 없습니다. 예의는 중심에서 나와야 합니다. 한비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입니다. 예의라는 것은 마음속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입니다.


예배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예의입니다. 예수님께 일주일에 한번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예의는 속과 겉이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속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바로 여기에 계시다는 현존 의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예배에 사도신경이 있어야 한다, 찬송이 있어야 한다,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방법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영으로 여기 계신다는 현존의식이 없으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여기 계십니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어떻게 보고 살 수 있습니까?


1. 주님이 현존하시고 동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눅 24: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엠마오의 제자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 우리 예수님은 죄도 없는데 생사람을 잡아서 돌아가셨어’라며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에 비하면 좋은 사람들이지만 똑같이 주님의 부활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동행하시는데 몰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영으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는 영체로 다니셨습니다만 이제는 영으로 전 지구의 사람들을 동시에 다 만나주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나와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동행하여 주지 않는 분도 있습니까? 누구에게나 동행하십니다. 단지 오늘 성경 말씀처럼 알아보지 못하면 동행하지 않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엠마오의 제자들은 동행의식이 없었습니다. 믿는 자의 실력 중에 가장 중요한 실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 동행의식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접했으면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행의식입니다. 동행의식이 바로 중생입니다. 거듭남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동행하는 분이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축복은 동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에 세례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동행하십니다. 여기에 앉아계신 성도님들이나 2층 유아실에 계신 분들 모두 주님이 동행하고 계십니다. 옆 자리의 성도님들을 서로서로 잘 보십시오. 주님이 동행하시는 분들입니다.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동행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가 문제입니다. 동행해도 알아채지 못하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큰 손해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사랑과 동행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기를 해치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우울한가 말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동행의식을 가지는가 입니다. 어떻게 하면 동행의식이 생기는가 입니다. 말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여기 계시지요. 주님 도와주세요. 저의 눈이 밝아지게 해주세요.’ 자꾸 말을 걸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믿어서 잘된 사람들은 많습니다. 야곱은 뭐라고 말합니까? ‘아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시도다.’고 말합니다. 다윗, 아브라함과 이삭도 하나같이 예수님의 동행의식을 가지고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기도 잘하는 사람들은 동행의식을 갖고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동행의식을 가지고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믿고 말을 거시는 분은 잘될 줄로 믿습니다.


2. 부활의 주님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눅 24:7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슬펐습니다. 슬플 일이 아니었는데 예수님과의 동행의식이 없으니 슬펐습니다. 예수님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동행할 뿐 아니라 주님은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은 너무 다릅니다. 우리는 주님을 정말 오해가 있습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 49:14-16)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실제로 등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네가 나를 버려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겠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아카페로 사랑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카페의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절대로 이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아카페로 사랑하고 있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당당하게 확실하게 믿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도 솔직하게 진실하게 주님을 겉과 속이 같게 예의를 다하여 대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손해 보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당당하게 기뻐하고 확실하게 기뻐하고 그 사랑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사랑하십니다.


3. 주님의 현존과 사랑을 빨리 믿어야 합니다.
눅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신앙생활은 재미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큽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냥 세상 사람들끼리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아카페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동행하여 주십니다. 문제는 빨리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빨리 예수를 크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요. 더디 믿어도 사랑하십니다. 더디 믿어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험합니다. 더디 믿는 것은 크게 손해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하나님이고 그 다음은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의 축복을 먼저 받고 나중에 잘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부분을 먼저 채워야 합니다. 영적인 부분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방법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을 잘 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모셔 놓고 말을 거는 것을 싫어하면 주님도 입장이 곤란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대접하면 결국에는 더디 믿는 것이 됩니다. 빨리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세상의 진짜 중의 진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짜 중의 진짜는 예수님이 천상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으로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활의 주님과 동행의 재미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기쁨과 사랑의 즐거움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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