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은 위험합니다 (마태복음 12:42-45)

빈집은 위험합니다



말씀: 마태복음 12:42-45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서론]


최근에 유명한 정치인이 자신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이 시대에 생명을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생명을 버린 사람들은 주로 착하고 여린 사람들입니다. 때로 저는 여러분에게 ‘너무 여리지 마라, 너무 착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목숨을 스스로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사람의 마음을 잡아주겠습니까. 사람은 누구에게 마음이 잡혀야 하겠습니까. 이분 저분 마음이 모두 다 힘들어 보입니다. 큰 소리 치는 사람도 마음이 힘들어 보입니다. 눌리는 사람도, 누르는 사람도 힘들어 보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국민들도 힘들어 보입니다. 사업하는 분이나 종업원도 힘들어 보입니다.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힘들어 보입니다. 학생들도 힘들어 보입니다. 모두 힘들어 보이는 이 세상이기에 자살하는 사람을 동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가장 귀한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옛날에는 힘들어도 포기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들 힘들게 살고 어려서부터 힘든 것이 무엇인지 겪으면서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너무 귀하게 키운 아이들이라 거친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언제까지 따라다니며 해줄 수는 없습니다. 부드러운 음식만 먹은 자녀들이 거친 세상에서 절망합니다. 생명까지도 포기하고 가정도 포기하고 가족 관계도 포기합니다. 무서운 말도 함부로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합니다. 이런 자녀들을 보고 부모들도 또 극단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가장 귀한 생명의 구주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남방 여왕이 지혜를 구하려고 솔로몬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남방 여왕은 ‘지혜가 있다.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지혜가 있다. 그 지혜를 솔로몬이 갖고 있다. 그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나는 솔로몬에게 간다. 나는 솔로몬의 지혜가 너무 너무 탐난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시바 여왕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의 지혜를 넘어 탁월한 지혜자가 있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할 만큼 꽤 지혜로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디오피아 나라에다 지혜를 대대로 도입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큰 꿈, 이디오피아 역사를 새롭게 할 마음을 품고 솔로몬의 아기를 얻어 귀국하였습니다. 당대의 지혜자 솔로몬을 향하여 모든 것을 던져 그녀는 아들 메네리크 1세를 얻고 그로부터 하엘레 살라시에 왕 때까지 수천 년간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엘레 살라이에 황제의 뜻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우리나라를 살려준 유엔 공동방위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탁월한 사람이며 이디오피아는 그의 유엔창설 개념을 따라 우리나라에 파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하십니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시바 여왕이 선택하여 복을 받았던 솔로몬보다 더 크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높은 것 같으나 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있는 인생은 비천한 자 같으나 귀한 인생입니다. 시바 여왕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솔로몬을 소중히 여겨 천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우리 주님,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시면 어찌 복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 이외의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큰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바다보다 더 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세상의 것으로는 절대 가득 차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우면 빈 공간이 생기고 그 빈 공간에는 마귀가 들어갑니다. 위험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로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가장 귀한 예수로 채워야 비로소 채워집니다. 은혜로 십자가로 큰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람이나 세상의 것으로는 채울 수 없다고 결론을 확실히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2.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예수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마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우리는 예수를 적극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예수 믿지 않을 때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을 때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못합니다. 믿음의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시바 여왕이 지혜를 구하는 태도의 적극성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시바 여왕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이국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솔로몬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낭만적인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위대한 가치를 위하여 생명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세운 왕조는 수천 년을 지속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에도 태도가 중요합니다. 적극성을 잃으면 신앙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잊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성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주인화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기도입니다. 무엇을 기도하면 응답을 주신다, 안 주신다 여기에 치중하는 것은 표적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도를 통해 나의 삶을 하나님께 의뢰하고 인도받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나의 예수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으로 채워야 삽니다. 기도를 하되 성경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빅터 프렝클은 유대인으로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1905년부터 1907년까지 아우슈비츠에서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훼손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나치는 빅터에게서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직업도 빼앗았습니다. 가족을 빼앗았습니다.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굶기고 때리고 저주하고 혹사시켰습니다. 그들은 그의 인생을 낭떠러지 끝까지 몰고 갔습니다. 거기서 언제라도 그를 밀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미 수천 명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습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아침, 빅터는 등짝에 내려 찍히는 권총 모서리의 감촉을 느끼며 짐승처럼 들판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박사지만 빈집입니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지만 빈집입니다.


그 순간 빅터 프랭클의 마음속에 아가서 8장 6절 말씀이 맴돌았습니다. "너는 나를 도장처럼 마음에 새기고 도장처럼 팔에 새기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로 채운다는 것은 도장처럼입니다. 이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는 죽음이 올수도 있다는 존재적 진공의 위험, 빈집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빈집의 위험은 방황하게 합니다. 때로 죽음에 이르게도 합니다. 환경을 이기지 못하게 합니다. 빈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의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근본적인 목표이신 예수 외에는 다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예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기독교 사상 외에는 다 버려야 합니다.


독실한 불교신자들을 보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심각하고 기독교인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결론이 나왔습니다. 성철이라는 분이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부처가 사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여러분은 길을 잘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동기를 바꾸셔야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아무리 좋고 많아도 사람의 마음은 깊고 넓어서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귀한 것도 높아지는 것도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왜 내가 존재하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가 인생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나를 꽉 채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우선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내 존재의 공간에서 떠나간 마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버리지 못하면 다시 옵니다. 또한 버린 곳을 예수님으로 채우지 못하면 다시 마귀가 들어옵니다. 빈 곳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예수님 외의 다른 것이 들어있으면 돌아옵니다. 

 

[결론]


마음을 확정합시다. 예수님만 모시고 삽시다.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결심합시다. 주님이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듣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예수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세상으로 채우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채우는 척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으로 채워야 삽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여기에서 결정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이전보다 더 악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경읽기를 중단하면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면 안 됩니다. 기도의 십일조 2.4시간으로 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하시어 인생의 해결을 받으시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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