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우리 구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말씀: 히브리서 3:1-4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서론]


어떤 수줍음 많은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모두 전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쿵쾅거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전도지를 나눠주나’ 하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준비했지만 계속 떨렸습니다. 드디어 전도시작! 두 명씩 나가서 전도하는데 짝이 안 맞았는지 그녀는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내내 망설이며 기도 하다가 교회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다니…’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앞을 보니 버스정류장에 키 큰 남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겨우 다가가 전도지를 내밀자 남학생은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은 불타는 감자처럼 빨개졌습니다. “저…저…이거!” “이게 뭐예요?” 남학생은 상냥하게 물었지만, 그녀는 당황하여 얼떨결에 “어..어.. 읽어보세요!” 하고는 후다닥 도망쳤습니다.


교회로 돌아와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전도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복음을 부끄러워했나. 그 사람이 묻는데 복음을 알려주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녀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오늘 밤부터 잠들기 전에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 “하나님,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해주세요. 주님의 뜻대로 가게 해주세요. 구원해주세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매일 매일 기도했습니다. 20년이 넘은 어느 날 그녀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어떤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 소개를 보는데 독특했습니다. 약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동네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 키 작은 한 여학생이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얼굴이 빨개져서 가버렸지요. 저는 전도지를 읽다가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으면 어쩌지? 예수님은 정말 계실까? 왠지 교회 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나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님께 저를 드리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글을 읽는 그녀의 눈에서는 감사함으로 눈물이 마구 흘렀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야 합니다. 천국 가는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예수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추진력은 어디에서 얻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깊이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영어 성경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fix your thoughts on Jesus”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너의 생각들을 고정시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생각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생각을 집중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축복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기쁨도 없습니다.


1. 고난을 당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합시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장 1절은 “그러므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2장 끝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18절에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리라” 했습니다.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20~21절에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고난 뒤에 있을 영광을 기대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받는 환난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전부 순교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를 깊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천국이 목적입니다. 죄로 인하여 천국에 못갈 사람이 예수의 고난의 공로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야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탕감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말은 참 좋은 말인데 고난이 어떤 고난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그 아픔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픔을 생각하는 깊이가 없으면 안 믿어집니다. 구원은 은혜이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내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그 수고는 해야 합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기도하는 수고는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아프셨나...’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수치를 당할 때의 아픔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시당해 보셨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밟아버리려고 하는 것을 경험하여 보셨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정말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데 사람들은 예수를 무시합니다. 예수님은 아프실 것입니다. 잘 아는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이 아픕니까. 모르는 사람이 무시하는 것이 아픕니까.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소중히 여깁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2. 충성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도 신실합시다
히 3: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으로 신실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신실하셨습니다(히3:2~6). 아버지 앞에 신실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예수님처럼 신실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신실하셨습니다. 그가 죽으신 것은 아버지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7~18절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고, 목숨을 얻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신실은 충성입니다. 신실은 지속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 맘으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맘으로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만약 예수님이 변하지 않는 성실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세례를 받을 때의 감격이 어디에 갔습니까. 임직 받을 때 그 감격이 어디에 갔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변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 너 싫어’ 하셨더라면 우리의 구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 자주 변해도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도 변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변하여 식었을 때 주님이 오시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까. 그분에게 신실합시다. 예수님께 충성합시다.


3. 예수를 깊이 생각하여 믿음의 도리를 지킵시다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에 예수님이 우리의 사도라고 하십니다. 사도는 제자이면서 직접 경험한 분을 말합니다. 제자이면서 예수님을 경험하여 우리를 진짜로 가르칠 수 있는 분이 사도입니다. 그런데 진짜 진짜로 가르칠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진짜 제자가 되어야 하지요. 학생이 되어야 하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도리를 실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주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믿음의 도리입니다. 주님께 도리를 다하여야 하는데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주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이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리점이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대리점입니다. 교회에 주님의 도리를 다합시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공식 예배에 출석해야 합니다. 주님과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도리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려는 것은 믿음의 도리가 아닙니다. 도리를 지켜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대화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십의 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십의 일조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핵심적인 운영비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여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믿음의 도리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 의하여 전도를 받았다면 우리도 전도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영혼 구원이 믿음의 도리입니다. 우리의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효도도 도리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도리를 지키는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부디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배우면서 믿는 도리를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구원이 위태롭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는지를 모르면 공로를 모르고 공보를 모르면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주님 사이에 신실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실하여야 합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믿을 만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믿을만해야 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보실 때에 어떠하다고 생각하실 것 같으십니까.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믿는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오늘부터 신실하십시다. 오늘부터 신실하여 믿음의 도리를 지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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