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을 실현하는 용기

간절함을 실현하는 용기



말씀: 누가복음 18:1-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서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려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목표를 이루어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여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패와 성공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끈기와 간절함’이 중요합니다. 끈기과 간절함으로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 끈기와 간절함이 우리를 성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인도의 영원한 아버지 간디는 ‘이 세상의 유일한 악마는 우리 마음에서 날뛰고 있다. 모든 전투는 자신과 마음속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자신이 천사입니다. 그러나 자신과 싸워서 지는 사람은 자신이 악마라는 말입니다. 천사와 악마의 차이는 간절함입니다. 열등감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담배를 끊겠다고 자신에게 약속을 하고 질 지켜 담배를 끊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담배를 끊는다는 약속을 자신에게 지키지 못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이것이 열등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어느 회사에서 사원을 모집했습니다. 아침 9시에 오라고 했는데 12시가 지나고 2시, 3시가 지나도 회사 측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 갈수록 불평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드디어 불평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더니 거의 다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불평하지 않고 ‘무슨 뜻이 있겠지’ 하면서 끝까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저녁 5시가 되어서 회사 측의 사람이 나오더니 끝까지 불평하지 않고 참고 기다린 사람 전원을 채용했습니다. 그 회사는 입사 시험으로 사람의 ’간절함’을 본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간절함으로 비롯된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끈기는 생명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입니다. 간절함과 끈기가 없는 사람은 시작은 하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혼자된 여인은 아무런 힘도 없고 사회적으로 빈궁한 처지에 있는 자입니다. 혼자된 이 여인은 자신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법정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기회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재판관의 마음에 정직한 마음이 생겨나기를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재판관은 양심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날이면 날마다 그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간절하고도 끈기 있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관은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청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판관이 혼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녀는 정말 귀찮은 존재다. 나는 그녀 때문에 너무나 괴롭다.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너무나 피곤할 뿐이다. 더 이상 그녀의 청을 견딜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내가 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재판관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 재판 문화는 송사할 사건을 장로들에게 가져갑니다. 장로들은 세 명의 재판관을 구성합니다. 피고 측에서 한 명, 원고 측에서 한 명입니다. 다른 한 명은 임명합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 식미지였기 때문에 헤롯이나 로마 총독이 임명한 재판관이 재판을 맡았습니다. 그의 공식 직함을 ‘다이야네 게제롯(Dayyaneh Gezeroth)’이라 불렀습니다. 이 말의 뜻은 ‘금지 혹은 처벌관’입니다. 잘못된 것을 금지시키고 처벌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재판관을 ‘도둑놈 재판관’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정성 없이 뇌물에 따라 자기 멋대로 재판하는 폭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양심적인 재판관에게 혼자된 여인의 무기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끈기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혼자된 여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끈질기게 간절함으로 매달렸습니다. 매일 찾아가서 졸라댔습니다. 그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이 혼자된 여인에게 들들 볶이다가 두 손 들고 항복한 것입니다. 이 간절함과 끈기가 본문에 나오는 혼자된 여인의 진정한 용기입니다.


이 여인은 세 가지를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매달렸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혼자된 여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별의 별 이상한 말을 다합니다. 그런 소리에 자신을 위축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말보다 자신을 더욱 강하게 했습니다. 둘째 재판관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이 악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 악한 사람도 이 여인의 끈질김 앞에는 항복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에게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는 운명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이 확신이 여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것이 다시 믿음으로 승화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혼자된 여인의 끈질김은 진정한 용기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 여인의 진정한 용기 있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용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 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끈기 있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약속은 이 사회를 지키는 뿌리입니다. 사실 약속은 너와 나의 계약입니다. 나 혼자 아무리 약속을 지켜도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약속은 파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다릅니다. 인간이 아무리 약속을 어겨도 하나님은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살고 약속에 죽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약속하신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약속 때문에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약속은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응답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10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1달러를 손에 쥐고 거리의 상점에 들어가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들은 안 판다고 매몰차게 내쫓았습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고 69번째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사서 무엇 하려고 그러니?” 아이는 눈물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봐주는 삼촌이 건축 현장에서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삼촌을 치료하던 의사가 “삼촌을 구해줄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신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진한 아이는 의사에게 “제가하나님을 사와서 삼촌에게 먹일게요. 그러면 꼭 나을 거예요” 말하고 하나님을 사기 위해 끈기 있게 돌아다닌 것입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니? 1달러요. 마침 잘 됐구나. 하나님은 딱 1달러거든” 노인은 아이의 1달러를 받고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삼촌이 이 음료수를 마시면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기뻐하며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삼촌, 제가 하나님을 사왔어요! 이제 곧 나을 거예요!”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음료수를 먹였습니다.

다음날 세계 최고의 의료진들이 병원으로 달려와 삼촌을 치료했습니다. 삼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이 다 나았습니다. 삼촌을 진찰한 의료진은 그 노인이 고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돈까지 다 대주었습니다. 감격한 삼촌은 조카와 함께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여행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점원은 노인이 남기고 간 편지를 전했습니다. “젊은이,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사실 모든 비용은 자네의 조카가 다 낸 것이네. 자네에게 이런 조카가 있다는 것이 축복이네. 자네를 위해서 1달러를 쥐고 거리를 누비며 하나님을 찾아다녔다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자네를 살린 건 하나님이시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진정한 용기 있는 믿음입니다. 용기 있는 믿음이 없으면 약속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한번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합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우리 한번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고 응답받을 때까지 끈기 있고 용기 있는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낙심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용기 중의 용기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본문 1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말씀하십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늦어지면 이 정도 기도를 했는데 왜 응답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도를 포기합니다. 여기에서 사탄에게 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신앙은 낙심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끈기 있게 매달리는 것이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혼자된 여인이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포기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지치기도 합니다. 이 ‘지친다’는 말은 ‘용기를 잃다, 낙담하다, 축 늘어지다.’ 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지칠 때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용기의 믿음이라는 것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세워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원어로 번역하면 ‘옆에서 나를 도와주는 분, 변호하는 분, 협력자’라는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입니다. 낙심한 나에게 용기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처럼 이 땅의 고난과 슬픔에서 벌떡 일어나는 진정한 용기입니다.


우리에게는 기도라는 최신 무기가 있습니다. 기도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최신 무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무기입니다. 기도는 미사일보다도 빠르고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기는 곡사포나 직사포도 됩니다.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저보다도 더 빠른 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도라는 무기입니다. 문제는 기도라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용기를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응답받을 때까지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끈질기게 믿고 기도 하는 것이 기도를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낙심하는 것입니다. 내사 스스로 실망하는 것입니다. 낙심과 좌절은 깊은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안 된다는 낙심의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느 것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나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믿음은 기도하는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잠에 떨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형식적인 기도에 머물러 깊이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간절함과 끈기가 없는 기도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 응답이 늦다고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안 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간절하고 끈기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말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사람인가? 너는 깨어 기도로 끈기 있게 나를 기다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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