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축복을 감사하는 자

주어진 축복을 감사하는 자



말씀: 창세기 3:1-7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서론]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미래와 현재 상태에 대한 불안과 불만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행한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왜 불행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불평하는 사람인가요?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그 다음 말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선물로 주시고 말슴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너희의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선악과는 손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는 내가 만든 피조물이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경계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경계선인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게 되었고 해산의 고통과 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잘못으로 인간은 스스로 지옥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결과를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축복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의해서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이라는 큰 축복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에덴동산의 축복을 알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불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너무나 큰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이 세상에는 감사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동물이 아니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침에 일어나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빛나는 아침 햇살을 받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항상 잔소리를 하는 아내 때문에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나의 부족한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스트레스의 대가(大家)’이신 한스 셀리에 라는 내분비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캐나다 분으로 1958년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나이가 들어서 고별 강연을 하버드대학에서 했습니다. 강당에는 백발의 노교수들이 빽빽이 들어섰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기립 박수도 이어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가는데 학생이 길을 막으면서 ‘선생님, 우리가 스트레스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 한 가지만 말해 주십시오.’ 그러자 이분은 한 마디를 대답했습니다. ‘Appreciation’ 즉 ‘감사하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한스 셀리에 박사의 말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축복으로 알고 범사에 감사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만큼 강력한 스트레스 정화제는 없습니다. 감사만큼 강력한 치유약도 없습니다. 성도들이 장수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범사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작고 하찮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 자세가 종교인이 장수하는 비결로 의학에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합니다. 또 우리가 뇌 과학적으로 말하면 감사하는 순간에 ‘세로토닌’이 펑펑 쏟아진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것이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는 신체가 허약한데 아침마다 감사 기도를 드림으로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눈이 보인다. 귀가 즐겁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너무나 좋다. 모든 것을 감사한다. 인생은 참 아름답다.” 그는 이렇게 감사기도 드림으로 안보이던 눈이 보이고 잘 들리지 않는 귀가 들리고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좋은 결과를 만드는 축복의 명약입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내 발로 이렇게 대지를 버티고 서있는 것​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생활을 어느 한 순간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본문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이라는 축복 가운데 살면서도 감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불행을 저질렀습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죄짓는 곳에만 눈을 뜹니다. 잘못된 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알고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축복을 감사로 알 수 있을까요? 


첫째는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이 땅에 존재하도록 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망각하는 순간 인간은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의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는 말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하셨는데 그 말씀을 바르게 듣지 못하고 스스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따먹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나의 위치를 바르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바르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를 알고 거기에 맞추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맞도록 잘못 해석했습니다. 본문 2절과 3절입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2장 17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말과 ‘죽을까 하노라’는 말은 너무나 차아기 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기들의 입맛에 맞도록 왜곡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로 말하면 이단입니다. 그러나보니 너무나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말씀을 바르게 받아야 합니다. 내 입장에 편리하도록 말씀을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에서 기록한 말씀 그대로 미련스럽게 따라가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더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뺄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믿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간교한 사단의 계략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의 근본은 간교한 것입니다. ‘간교’라는 말은 ‘간사하고 교활 한 것’을 말합니다. ‘간사하다’는 말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나쁜 꾀를 부리는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또 한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간사한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신앙의 원칙을 세워 그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사단은 얼마나 간사한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묻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99.9%는 다 먹되 0.01%인 선악과 나무의 열매만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산의 모든 나무”라고 간교하게 물었습니다. 이런 질문에 결국 아담과 하와는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에게 아주 간교스럽게 찾아옵니다. 우리의 형편이나 처지를 잘 이용하기도 합니다. 너만 그렇게 잘 믿으려고 하느냐? 반문하게 합니다. 어느 장로님이나 집사님을 보라고 합니다. 너보다 먼저 믿은 그들은 너보다도 훨씬 못하게 믿는다고 말합니다. 비교를 하게 합니다. 사실 신앙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 자체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단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세워진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그 신앙으로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을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강화도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가 ‘교산교회’입니다. ‘교산교회’는 당시 선교사가 그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가장 반대하던 서당 훈장 김상임이 세웠습니다. 김상임이 선교사를 배척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회개했습니다. 이후 김상임의 변화를 보고 분개한 친구가 박능일입니다. 그런데 박능일이 복음을 듣고 변화를 받아서 강화도에서 두 번째 세운 교회가 ‘홍의교회’입니다. 박능일은 1896년 서당 학생 7명을 중심으로 홍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제까지 자기들이 옳다고 하던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성경대로 믿고 실천하며 살기로 하였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믿음 안에서 첫 열매라는 것을 믿고 신분과 족보의 서열을 따지지 말고 한 형제, 한 가족의식을 갖기로 약속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서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능(能), 신(信), 경(儆), 봉(奉), 순(純), 천(天), 광(光)자를 적은 종이를 자루에 넣고 제비뽑기를 합니다. 그것을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삼고 끝 자를 돌림자 한 일(一)자로 개명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박능일, 권신일, 종순일, 김경일 등으로 자기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홍의교회 일자(一字)신앙의 전도인들의 열정으로 강화 선교 10년 만에 전 지역에 걸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현재도 30% 복음화율로 전국에서 최고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감사함으로 열심히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의 축복을 축복으로 아는 사람에게는 항상 감사가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것인가를 알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행복한 신앙생활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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