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누구를 책임지실까?

하나님은 누구를 책임지실까?


말씀: 출애굽기 34:17-24

17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19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서론]


하나님은 과연 우리를 책임져 주실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지켜주시고 어떤 사람은 안 지켜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형제인데 야곱은 책임지시고 왜 에서는 안 지켜 주셨을까요? 같은 집 형제인데 왜 이삭은 책임져 주시고 이스마엘은 버리셨을까요?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롯은 버림을 받을 뻔하였을까요? 왜 다윗은 책임지시고 사울은 버린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출 34:24)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지켜주시는 조건을 찾아보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신상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출 34:17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집안에 신상이 있으면 하나님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온갖 신상을 다 갖다 놓으면 그것들이 다 책임져 줄 것 같지만 하나님은 책임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 신상입니다. 그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두 갈레의 길이 있습니다. 악한 영의 길과 성령의 길, 에덴에서 하와가 악한 영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거룩한 영을 선택해야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역사에 대한 포기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왜 지경을 안 넓혀주십니까?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우상이 있으면 안 됩니다. 우상을 섬겨도 한동안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큰 것을 크게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할 때에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은 쉽습니다.


2. 무교절(사순절)을 감사로 지켜야 합니다
출 34: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아빕월은 3-4월 우리나라로 하면 정월 대보름날입니다. 무교절을 지켜야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본의 아니게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종살이를 한 민족이 한 두 민족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순종했던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들을 건져주셨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약속의 사람입니다. 세례 받으셨는지요? 세례 받으셨으면 약속의 백성입니다. 돈이 많아도 가문이 좋아도 직책이 높아도 약속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주셨습니다. 10가지 재앙으로 이집트 사람을 치시고 건져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이집트 사람들의 장자를 칠 때에는 긴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대로 된 빵을 먹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빵에 누룩을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빵을 먹고 나왔습니다. 이래서 무교절이 됩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을 잊으면 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신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세상살이입니다. 세상살이를 끝냈다는 표시로 무교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교절도 감사절기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분명한 자를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제고시키는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이라고도 합니다. 유월절에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뿌립니다. 사탄이 그 피를 보고 넘어갑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주의 십자가가 있음으로 인하여 원수 마귀는 물러갈 줄 믿습니다. 틈도 못 탈 줄로 믿습니다.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가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3.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합니다
출 34: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하나님도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하실까요? 맥추는 여건이 안 좋을 때 드리는 감사입니다. 보리를 거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하던 사람들이 염소 잡아먹으면 되는데 뭐 그리 보리가 좋다고 보리 거두어 놓고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보리는 맛이 없습니다. 광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기가 더 적합합니다. 그런데 왜 보리 두고서 감사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족이었습니다. 유목생활이라는 것은 집을 두고 양을 먹이기 위해서 때로는 멀리 갔다가 긴 시간을 경과한 후에 돌아옵니다. 피곤과 가난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유목을 청산하고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데 그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 보리입니다.


보리는 추수가 아니라 첫 곡식에 대한 감사입니다. 실질적 수입이 아닙니다. 그 상징인 보리에 대한 감사는 단순한 보리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가나안을 향한 감사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관문적 성격입니다. 유목민 생활을 마칩니다. 이제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갑니다. 아직 그 전모가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보리가 보입니다. 이 보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감사가 없으면 가나안은 없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인도했음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나안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맥추감사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아직 가난합니다. 아직 고달픕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현상화 되지 않았지만 이제 그 문턱에 있습니다. 보리가 있습니다. 보리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 문턱을 넘습니다. 이것이 바로 맥추감사입니다. 직장 문제도 그렇습니다. 아직 직장은 없지만 좋은 징조가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주 조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 정도인데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축복의 본 진수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만 아까워서 못합니다. 이래서는 가나안의 문을 넘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의미로 생각하면 맥추는 항상 시기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시기적으로 가을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이 첫 곡식에 대한 감사라면 추수감사주일은 저장할만한 양식을 모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구체적인 수입이 있습니다. 맥추는 첫 수입이라면 수장절은 본격적인 수입 대한 감사입니다. 유목민이 이제는 완전히 농경 수입이 생긴 것입니다. 너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포로생활 노예생활을 했는데 이제 벗어났습니다. 유목민이 농경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농경지에서 수입을 얻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이 감사가 없으면 하나님이 지켜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서 축복의 조건이 된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절이라는 것은 역사성의 문제입니다. 연속에 대한 약속의 문제입니다. 홍해를 건넌 사실에 대한 인정 후에 광야에서 축복 받은 것에 대한 인정은 계속적인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전제 조건이 됩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일단 하나님의 계속적인 역사에 대한 거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감사하면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불평하면 귀신이 역사합니다. 그 성령님의 지속적인 역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조건이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감사 소리가 안 나옵니다.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감탄고토입니다. 달면 빨고 쓰면 뱉는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일이 안 풀립니다. 감사가 없으면 막힙니다. 감사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맥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성경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결과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감사만이 축복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사라는 축복의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감사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일주일을 감사함으로 주일성수 합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고 신앙고백이 분명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무교절과 맥추절, 추수감사절 절기를 감사함으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 감사할 일을 더 많이 만들어 주십니다. 자녀도 책임져 주실 줄을 믿습니다. 경제를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건강을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경이 넓어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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